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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골수 vs 양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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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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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할 때일수록 꼭 양다리를 걸쳐온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보면서 문득 생전 고칠 도리가 없는 병이 든 것처럼 느꼈다."

박완서의 소설 `미망`의 한 구절이다. 구한말 개성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한양으로 가 고학생이 된 종상이 조선인인 자신이 서양 문명을 경험하고 돌아온 뒤 고뇌하는 장면이다. `양다리`라는 말은 비단 우리네 삶뿐만 아니라 경제, 사상, 교육 등에서 지금까지 부정적인 단어로만 쓰여 왔다.

수년 전, `1만 시간의 법칙`은 그야말로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시간을 노력해야 한다는 이 법칙은 성공의 법칙으로 간주됐다. 최근까지 이 법칙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 즉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교육 방식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전문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즉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폭넓은 사고의 소유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높은 현대사회에서는, 이른바 `양다리를 걸치며` 두루 경험을 쌓은 제너럴리스트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19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문화를 바꿔놓을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혼란한 상황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지닌 제너럴리스트가 적응이 빠를 뿐 아니라 여러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 항상 자신이 속한 세상과 다른 세계에 양다리를 뻗고 있는 사람은 변화에 민감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알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의 교육도 앞으로 전문가와 제너럴리스트를 함께 길러낼 수 있도록 달라져야 한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는 그 분야에서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 속에서 활동할 제너럴리스트는 폭넓은 경험을 해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한다. 여기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소양, 인생을 타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지난 5월 미국 의학자들은 논문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병원에 필요한 것은 다양한 지식을 갖춘 제너럴리스트이며, 의료 종사자들을 최대한 빨리 `비전문화(unspecialize)`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정한 질병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전염병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는 제너럴리스트가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위기 속에서 세상을 헤쳐 나갈 해답은 전문가의 깊은 통찰력이 찾아낼 수 있으며, 제너럴리스트의 넓은 시야는 그 해답을 모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19 뉴노멀 시대를 이끄는 것은 이제 `외골수` 전문가뿐만 아니라 `양다리` 제너럴리스트, 두 서로 다른 리더들이 함께해야 할 몫이라는 뜻이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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