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수 교수, [노벨상에 도전하는 과학자] “규모 크지 않더라도 꾸준한 지원과 사람 육성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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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4 / 7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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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던 이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한 번쯤 이들의 행보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1994년 수능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던 윤건수 교수는 현재 포항공과대학에서 물리학과와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를 맡고 있다.
수능 최고점을 차지하며 백발백중 문제를 풀어냈던 그이지만 현재 '연구자'로 살고 있는 그는 “연구란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첫 단계다”고 말한다.
그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스스로 찾아내거나 기존의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려면 연구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며 “‘어떤 문제를 찾아낼까’라는 시각 변화가 생길 때 좋은 문제들이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늘 그렇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분야는 플라즈마와 핵융합이다. 모두 에너지와 관련돼 있다. 인간의 문명과 뗄 수 없는 것이 ‘에너지’라는 점이 대학원 시절 깊게 와 닿았고 연구를 시작했다.
플라즈마는 물질의 네 가지 상태인 고체, 액체, 기체, 플라즈마 중 하나로, 물질을 이루는 원자 또는 분자에 충분한 에너지가 가해지면 원자가 핵과 전자로 분리되는데 이를 플라즈마라고 한다. 자연에서 볼 수 있는 플라즈마로는 태양, 태양풍, 극광(오로라), 번개 등이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플라즈마는 다양한 산업과 과학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에서의 많은 공정(노광, 식각, 증착, 세정 등)에서 플라즈마가 핵심 장비 기술로 사용되고 있으며, 표면처리, 용접, 레이저, 특수 광원 등 다양한 산업 및 군사 기술에서도 플라즈마를 만날 수 있다.
의료 영역에서는 멸균 및 조직 치유 등에도 플라즈마가 활용되고 있으며, 에너지 산업에서는 핵융합 플라즈마가 꿈의 에너지 자원으로서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플라즈마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우주라고 할 수 있겠다. 눈에 보이는 우주의 대부분은 플라즈마 상태로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그들 주위의 공간은 물론, 심지어 목성과 같은 가스 행성의 중심부도 매우 높은 압력에 의해 핵에서 전자가 분리된 플라즈마 상태로 추측되고 있다. 달의 표면도 아주 낮은 밀도의 플라즈마 상태라고 한다. 따라서, 우주는 항상 플라즈마 연구의 영감이 되어 왔다.
산업에서 사용되는 플라즈마의 온도는 1만도 이상으로 매우 높은 온도로 느껴지지만 학계에서는 ‘저온’으로 분류한다. 그 이유는 핵융합 플라즈마는 1억도 이상이기 때문이다.
핵융합은 중수소, 삼중수소와 같은 두 개의 수소 동위 원소가 높은 온도와 압력 아래에서 결합해 헬륨 등 더 무거운 원자핵을 형성하는 반응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질량의 일부가 에너지로 변환되며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윤건수 교수는 지금처럼 특정 지역에 한정된 자원을 파헤치는 노고를 들이지 않고도 확보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핵융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핵융합과 플라즈마는 환경 보호 면에서도 굵직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플라즈마는 공기 정화 및 폐기물 처리에도 사용된다. 핵융합도 대체 에너지로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 21일에는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인 날이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우주까지 연장한 그의 연구가 빛을 발하길 간절히 바라는 듯 탁한 하늘 빛이었다.
윤건수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오른쪽)와 전규열 뉴시안 대표(왼쪽) [사진=송서영 기자]
윤건수 교수는 “플라즈마와 핵융합의 미래는 '매우 밝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수밖에 없는 연구가 우주 영역이고 이 우주를 채우고 있는 것이 '플라즈마'이기 때문이다. 핵융합도 상용화 의지가 전세계적·국가적으로 강한 영역이다.
이러한 연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결국 연구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는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꾸준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 이어져야한다"고 말한다.
단기적인 경제 논리로만 움직여 당장 필요한 부분에만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지금' 연구를 놓친 이 영역들이 향후 꼭 필요한 절대 기술이 되어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래는 윤건수 교수의 일문일답.
# 플라즈마 물리학 및 핵융합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칼텍) 대학원 진학 당시에는 생물물리학을 선택했었다. 막상 연구를 시작하니 생각한 것과 달라 진로 고민을 하던 중 6개월즈음 지났을 때 학교에서 에너지 관련 강의를 듣게 됐다.
주제는 ‘화석 에너지 고갈을 대비한 대체 에너지 발굴의 필요성’이었다. 강의를 듣고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현대 문명이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고 굵직한 문명의 변화에 에너지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점이 깊게 다가왔다.
그때 에너지 관련 전공을 해보자고 생각했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유일하게 플라즈마를 다루는 교수님을 찾아서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계기로 플라즈마 물리학을 전공하게 됐다.
# 연구 과정에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이나 보람 됐던 성과는 무엇인가요?
▲ 연구를 하다 보면 해결되는 질문보다 새로운 질문이 더 많이 생긴다. 즉 ‘이 흥미로운 질문을 어떻게 해결할까’가 일상적인 도전이다.
그동안 핵융합·반도체 공정·우주 관련 플라즈마를 연구했었는데 태양 내부에 존재하는 플라즈마를 실험실에서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도전을 7~8년 전에 했고 지금은 성공을 했다. 실험실에서 태양 내부와 같은 플라즈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실험실에서 태양 내부와 같은 플라즈마 상태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 1억 도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구현하며 기록을 세운 연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1억도는 핵융합이 활발하게 잘되는 온도다. 태양의 중심부가 1500만도이니 1억도가 얼마나 높은 온도인지 상상이 될 거다. 이 온도를 구현하는 장치가 전세계에 몇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우리 나라에 있는 KSTAR(한국형 초전도 행융합 연구로)다.
그는 우리나라의 KSTAR에서 1억도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수십 초 이상 유지하고 그 특성을 밝히는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지구에서는 중력이 작아 1억도 이상의 플라즈마를 가두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핵융합시 중수소 삼중수소가 합쳐져서 헬륨 등을 만들어 내며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데 핵융합이 가능한 온도를 만들 수 있음으로 연구에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
# 플라즈마 경계면 불안정 현상(ELM)을 제어하는 기술이 핵융합 상용화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 핵융합 플라즈마는 너무 온도가 높아서 아무리 고온에 잘 견디는 재질의 용기로도 가둘 수가 없다. 따라서 플라즈마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자기장으로 만든 용기를 사용하는데 딱딱한 고체가 아닌 자기장으로 만든 용기다 보니 구멍이 날 수 있다. 그것을 경계면 불안정(ELM)이라고 한다.
플라즈마를 생성한 장치 안에는 온도가 높고 바깥쪽은 진공 상태다. 내부 압력은 1기압 정도 된다. 압력 차이가 큰 만큼 플라즈마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경계를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구멍이 나면 일시에 뜨거운 입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진공용기 벽면을 치면서 큰 손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러한 ELM을 제거하기 위해 ELM의 생성과 붕괴의 전 과정을 촬영하는데 필요한 영상진단장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ELM 제어는 안정적인 핵융합 에너지 생산과 상용화에 필수적 요소다.
윤건수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왼쪽)와 전규열 뉴시안 대표(오른쪽) [사진=송서영 기자]
# 핵융합 에너지가 상용화된다면, 현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 사람들이 핵융합 연구에 많은 연구비를 지원하는 이유도 ‘에너지 문제’ 때문일 것이라 본다. 현대 사회의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보면 화석연료, 재생에너지 그리고 또 원자력 등이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원자력은 장점이 많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물론 이산화탄소 등 다른 공해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방사성 물질이 핵연료에 많다는 큰 단점이 있다.
핵융합 에너지는 원자력 에너지의 장점은 챙기고 단점을 최소화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상용화된다는 건 그 목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에너지 안보적인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화석 연료는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원자력도 사실 핵연료가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우라늄 광석을 가져와서 농축을 통해 핵연료를 만드는 기술이 있더라도 국제 정치적인 면에서 할 수 없다.
대부분의 국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 역시 모든 에너지 자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핵융합은 연료 자체가 곳곳에 분포돼 있다. 삼중수소는 배터리에 들어가는 흔한 리튬으로 만들면 되고 중수소도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에는 중수소가 일정 들어있어서 추출하는 것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그래서 원자력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취하면서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다른 에너지를 다 대체할 수는 없지만 일정 부분을 보완할 것이다.
# 플라즈마 물리학의 발전이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 플라즈마는 현대 문명에 굉장히 오랫동안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의 거의 90% 가까운 부분에 플라즈마를 이런저런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산업 분야 외에도 플라즈마의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데 환경적으로는 가스 분해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 여러 가스가 나올 수 있는데 물에 녹이는 원리를 사용해 처리를 한다.
물에 잘 안 녹는 가스라면 플라즈마를 사용해 태우거나 물에 잘 녹게 변환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플라즈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기 에너지가 많이 든다. 이 외에도 폐수 처리, 우주 환경 문제에도 플라즈마를 사용할 수 있다.
# 플라즈마 물리학과 핵융합 연구의 미래는 어떻게 보시나요?
▲ 둘은 매우 큰 관련이 있으면서도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전망을 말씀드리면 매우 미래가 밝다고 본다. 앞으로 계속 클 수밖에 없는 기술이 우주기술이다. 우주로 나가는 순간 플라즈마는 필수적인 요소다.
우주 공간은 플라즈마로 가득 찬 공간이다. 태양이 플라즈마 덩어리인데 우주는 태양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우주 산업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기 때문에 플라즈마 물리학과 공학도 같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핵융합은 이미 순수 학문 영역에서 벗어나서 공학 연구가 더 중요해진 분야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상용화에 가까운 장치를 만들어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한 공학적인 연구가 두가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것은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있고 국제 핵융합프로젝트 등이 있다. 또 하나의 형태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민간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만 해도 40여개의 스타트업이 있다. 매우 큰 투자를 받고 있다.
주변에도 미국에서 핵융합 관련 창업을 한 친구가 2명이나 된다. 요즘 졸업하는 핵융합, 플라즈마 전공 졸업생은 핵융합 스타트업으로 많이 진출한다. 그런 관점에서도 산업이 열리고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 이전에는 기초 연구 중심이었다면 스타트업 기업으로 확장되는 등 상용화되고 있다. 단순 에너지로서의 연구가 아니고 민간에서는 상업적인 가치를 만들어야 하니 의료, 군사, 우주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핵융합 기술을 바라보고 있다.
# 필요한 정책 지원은 무엇이 있을까요?
▲ 대학에 있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정책 지원은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꾸준히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9년부터 핵융합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인력양성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학생들이 지금 핵융합 연구의 주축이 됐다. 핵융합 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있거나 관련 교수가 됐다.
2009년 당시와 비교해 보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핵융합 전문가가 많아지고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건데 결국 사람을 꾸준히 키워야 한다. 전문가가 되려면 적어도 10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력 양성 프로그램은 중간에 없어졌고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 교수들이 그 이전 수준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학위 과정 중 해외 경험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핵융합은 대형 장치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공동연구 경험도 필요한데 모든 것이 다 비용이다. 지금은 각각의 커뮤니티에서 자체적으로 재원들을 여러 방면에서 마련해 오고 있지만 힘에 부치기도 한다.
또한 지원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어떤 연구는 성과가 빨리 나고 어떤 연구는 그렇지 않다. 한 연구 분야에만 재원을 몰아주는 대신 연구 특성대로 재원이 지원되어야 한다고 본다.
반도체 장비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6개월 단위로 연구하고 시행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런 분야는 특성에 맞게 재원이 타임스케줄에 맞게 들어간다. 반면, 굉장히 긴 호흡으로 연구할 수밖에 없는 분야에는 긴 호흡의 재원이 제공되는 등 고른 재원 배분이 중요하다.
출처 : 뉴시안(http://www.newsi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