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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원자력의 미래, ‘설마’했는데 ‘역시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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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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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문희 포항공과대학교 겸임교수(現 한국핵물질관리학회장)

장문희 포항공과대학교 겸임교수(現 한국핵물질관리학회장)
맹자가 주창한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은 착하다(善)는 것이다. 때론 나쁜 악(惡)과 서로 부딪치면서 갈등을 겪지만 악을 이겨낼 정도로 근본 심성이 착하다. 착하기에 인간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믿는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두 번씩이나 믿은 우화도 있지 않은가. 속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또 믿어 본다. 우리 국민은 선천적으로 착해서 다른 사람을 잘 믿는다. 그러다 보니 보이스 피싱도 쉽게 당하는 것이다.

2017년 5월 10일, 국민은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대통령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 2년이 지난 2019년 4월 1일, 대통령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간담회 상황 일부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한 청년 단체 대표가 “정권이 바뀌었고 수많은 기대를 했는데 청년 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며 울먹였다는 보도였다. ‘혹시나’하고 크게 기대했는데 ‘역시나’여서 사람을 믿은 자신의 착함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울먹임이었지 않았을까?

사용후핵연료(SF, Spent Nuclear Fuel) 관리정책이 없다고 한다. 아니 표류하고 있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지난 정부 때 사용후핵연료공론화 위원회가 2013년 10월부터 20개월의 논의 끝에 2015년 6월 SF 관리방안 마련을 위한 정책적 권고를 만들어 정부에 제출했다. 지난 정부는 이를 근거로 제6차 원자력진흥위원회(2016. 7. 25)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의결하고, 이를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국회에 관련절차법 제정을 요청하였다. 관련법만 제정되면 계획(정책) 이행을 할 수 있었지만 법 제정이 되지 않았다.

현 정부는 관련법 제정 대신에 이미 만들어진 계획을 폐기하고 새로 만들겠다고 한다. 현재 계획을 만든 공론화 과정이 잘못되고 졸속으로 처리되었으니 이해당사자를 포함해서 공론화를 다시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움직임이 매우 느리다. 2018 년 5월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이 출범하여 11월까지 6개월여의 활동을 종료한지 5개월째인 2019년 4월 3일에서야 ‘(가칭)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구성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SF 관리정책이 국가적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너무나 느긋하다. 재검토 지연은 탈원전 명분 쌓기가 아닐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정황이 되었고 또한 실제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SF 관리정책 재검토 지연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이지 탈원전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믿어도 괜찮을까? 혹시 그 말을 믿었다가 청년단체 대표처럼 좌절하게 되지는 않을까?

이젠 SF가 가동 중인 원전의 운명을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되었다. SF 관리정책이 없다하니 SF를 우선 원전부지 내 저장시설에 임시로 저장할 수밖에 없다. 임시저장시설이 SF로 가득 차면 원전을 더 이상 가동할 수가 없다. 원전 가동 시 계속 발생하는 SF를 저장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습식이든, 건식이든 임시저장시설 확장 또는 추가시설이 필요하지만 기대난망이다. 법적 조치 없이는 지역 주민, 반핵 환경단체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법이 있다 해도 갈등과 반대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제 원전의 시한부 삶이 시작되었다. 월성 중수로 원전(3기)의 삶은 이제 약 2년 남짓 남았다(2021년 7월경에 SF 저장시설 포화 예상). 고리원전(5기)과 한빛원전(6기)은 2024년에, 한울원전(6기)도 2026년에는 삶을 인위적으로 끝내야 한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중환자도 아닌데도. 월성 경수로(신월성 2기)는 2038년까지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탈원전 주창자들은 탈원전의 책임이 에너지 전환정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자력계에 있다고 한다. 그동안 원자력계가 SF관리 문제를 등한시 한 결과라는 것이다. 원전을 계속 가동하게 하고 싶어도 SF를 둘 곳이 없지 않느냐고 묻는다. 탈원전 정책을 반박할 수 없는 아주 훌륭한 명분이다. SF 관리정책 재공론화와 정책 결정을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설마, 원전 가동중단 귀책사유를 원자력계에 전가’하려는 것인가 하고 우려했는데 ‘역시나’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물증은 없다. ‘설마’가 현실이 될 듯해서 씁쓸할 뿐이다.

SF관리(처분과 처리 등)는 반드시 해야 하기에 최선의 관리방법을 찾되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SF 관리기술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당연히 SF 관리정책 선택이 쉬워진다. 무릇 모든 기술에는 강점과 약점이 있으며 SF 관리기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연구개발이 필요한 것이다. 부족한 기술은 개발해서 채우고, 약한 부분은 개선하는 것이 연구개발을 하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SF에 포함되어 있는 방사성물질의 독성과 양을 줄이면서 동시에 유용한 연료자원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연구개발해오고 있다.

파이로 기술과 고속로 기술이 그것이다. SF 처분 부담을 줄이고 자원의 재활용으로 에너지원의 지속가능을 보장해주는 미래기술이다. SF 관리정책 수립에 참고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정보이다. 그 동안 적지 않은 연구비를 투입해 왔다. 기술적 가능성 확인을 근거로 기술실증과 활용성 확인을 위해 한·미 간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으로 관련연구가 조만간 중단 결정될 전망이다. 20여 년 이어져 오던 원자력이용 국책연구가 적폐로 몰려 그 간의 연구실적도, 한·미 간의 공동연구 결실도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운명이 되었다.‘설마’했는데 탈원전 정책이 탈원자력연구로 이어지는‘역시나’현실에 할 말을 잊을 뿐이다.

국내·외에서 우려가 큰데도 탈원전, 에너지 전환정책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초미세먼지, 온실가스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뜨거운 불인데도 탈원전 정책에 브레이크가 안 걸린다. UAE에선 한수원의 정규 인사이동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탈원전 정책을 진행 중인 한국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바라카 원전 운영허가가 나오면 당장은 한수원의 전문 인력에 운영을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바라카 원전에 익숙해진 전문가를 빼내고 있다고 생각되니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설마’했는데 ‘역시나’일까봐 두려운 것이다. 우리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국가적인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안정적인 전력공급의 중요성을 볼 수 있는 사례 한 가지를 보자. 대한민국 수출을 이끄는 삼성전자가 2017년 한 해 2.67GW 전력(1.4GW 정격용량 APR1400 원전 약 2.2기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에 해당, 원전 가동률 85% 가정)을 사용했다. 2018 년에는 3.55GW 전력(APR1400 원전 3기 생산 전력) 사용을 계획(실적은 2019년 6월 경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실릴 것으로 예상)했다.

에너지 전환정책의 요체인 소규모 분산형 재생에너지로는 감당해낼 수 없다. 반도체공정에서는 정전은 독약이다. 순간정전에도 공정라인에 있던 모든 제품은 불량이 되어 폐기해야 한다. 그런데도 전력공급을 위한 송전과 변전소 설치 갈등은 우리를 아프게 한다. SK 하이넥스도 전력수급 안정성 확보를 위해 LNG기반 열병합발전소 2기(각 570MWe, 영구 정지된 고리원전 1호기 용량과 비슷함)를 건설한다고 한다.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의 에너지 전환정책으로 빚어질지도 모를 전력수급불안정에 대비하는 목적일 것이다. 믿고만 있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는 대만의 탈원전 전력정책을 익히 알고 있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탈원전 정책 포기를 지지했지만 대만 정부는 계속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고집한다. 그 결과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업체) 대만의 TSMC 공장에 전력 수급이 안 돼 타 지역에서 전력을 당겨써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그 전력도 공급이 어렵다고 한다. 탈원전의 폐해로 전력 수급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한국과 대만, 에너지 정책만 보면 어쩌면 일란성 쌍둥이 일지도 모르겠다. 쌍둥이라고 해도 모든 행동을 똑 같이 할 필요는 없다. 나쁜 것은 따라 해서는 안 된다.

많은 논란 끝에 2015년 SF 관리방안 공론화 권고안이 나오기까지 20여 개월이 소요됐다. 이 번 재검토(재 공론화)에서는 이해당사자와 직접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한다. 권고(안)을 만드는데 지난번 공론화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권고(안)이 만들어져도 정부가 정책으로 결정하고 국회에서 관련법이 제정되어야 정책을 실행할 수 있다. 그 과정에 또 많은 갈등 등 힘겨운 과정이 충분히 예상된다. 월성(중수로) 원전은 2021년에, 고리와 한빛원전은 2024년에 SF 저장시설이 포화가 된다. 지금부터 겨우 2년, 5년 남짓 남았다. 2년 내에 SF 관리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월성(중수로)원전은 문을 닫아야 한다. 5년 일정도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다. 그러면 고리와 한빛 원전도 문을 닫고 발전을 중단해야 한다. 발전 중단을 위한 별다른 법적 조치 없이 자연스럽게 탈원전이 되는 것이다. 서두르고 서둘러도 시간이 모자랄 상황인데 너무나 느긋하고 또 느긋하다.

월성원전 3기(월성 1호기는 2018 년 6월 15일 조기폐쇄 결정으로 발전 중단), 고리원전 5기(고리원전 1호기는 이미 2017년 6월 19일 영구 폐쇄), 한빛원전 6기, 이들의 총 시설용량은 1,255만Kw(12.55GW)이다. 85% 가동률을 고려하면 발전량으로 약 1067만Kw(10.67GW) 규모이다. 8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예측한 2030년 총 공급량 101.9GW의 10%가 약간 넘는 전력량이다. 2024년까지 이만한 전력량을 어디에서 끌어올 수 있을까? 재생에너지 공급계획으로는 어림도 없다. 우주에서 내려다 본 어두운 밤하늘의 밝은 에너지 섬, 우리나라가 어둠 속으로 영구히 사라질까봐 아찔하다. 조만간 탈원전, 에너지전환정책의 험악한 실상을 보게 될까봐 두렵다.

국민 대다수는 지금의“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의 에너지 전환정책이 초래할 미래의 혼란 상황을 잘 모르고 있다. 당장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기에 관심도 없다. 전력 공급에 어려움이 생겨 TV를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없고, 냉장고에 넣어둔 식품이 상하고, 전기자동차가 충전이 안 되는 상황에 부딪혀야 비로소 에너지 전환정책의 허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렸다.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연환경 변경이 불가피하다. 환경론자들은 그 것을 자연훼손이라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환경보전을 최고선의 가치로 중시하여 탈원전을 주장하는 환경론자들이 문명의 혜택을 받는 것은 큰 모순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은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처럼 문명을 떠나 자연에 묻혀 사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래야 그들의 주장이 가치가 있고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받을 수 있다.

SF 관리정책 폐기와 재 공론화 추진 지연으로 자연스럽게 탈원전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아니다’라고 했지만‘설마’가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 이래도 정부는 끝까지 우리 사회에“공정”과“정의”가 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제발 청년대표만의 울먹임으로 끝나고 국민의 울먹임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우리 국민은‘양치기 소년’을 믿을 만큼 더 이상 착하고 순진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원자력신문 knp@knpnews.con